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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역시즌 행사의 기억... 그리고....

redchecker 2020. 8. 8.

요즈음 온라인 몰이나, 백화점 등의 대형 유통에서 심심치 않게 보는 것 중 하나가 "역시즌 행사"입니다.

오늘은 제가 해야만 했던 역시즌 행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2008년이나 2009년도였으니..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당시만 해도, 성수기 비수기 따져 보면 봄과 가을을 제외하고는 전부 비수기라고 볼 수 있었어요.

특히 여름에 진행하던 캠핑용품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게 되자, 판매단가가 낮아 일일 매출이 급감하기에 이릅니다.

영업부 회의를 시도 때도 없이 하고.. 물류를 아무리 내려가서 재고를 싹 쓸어다가 매장에 뿌리는 일을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전년대비 매출이 너무나 크게 나니 역신장폭도 크고...  회사 간부님들의 쪼임(?)은 극에 이르게 되었죠..

무더운 날씨에.. 어떻게 하란 이야기냐는 하소연도 통하지 않았었습니다.

급기야.. 대형 유통들도 캠핑용품이 빠지니 매출이 급감하고... 협력업체였던 저희를 쪼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것이 다 판매가 안되고 있는 한여름에.. 대형 유통 이벤트장에 들어오려는 업체도 없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급처방으로 매출이 높았던 매장을 대상으로 대형 행사를 잡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영업사원인 저에게 매대를 다 채워 넣어라는 주문을 하였지요.

앞이 캄캄했습니다. 매장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고, 오픈 물량도 부족 상황인데.. 행사 매대 채울 물량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행사계획서를 제출하라는 대형 유통의 요구에 더 앞이 캄캄했죠...

물류창고를 몇 번을 내려가 보고... 둘러보고 하다가.... 

박스 가득 쌓여 있는 저것들은 무엇일까 봤었습니다.. 겨울 패딩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가격 바코드도 아직 살아 있다고 하니... 하루에 한 장만 팔아도 여름 티셔츠 2~5개 판매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칩니다.

물류창고에 이야기를 해서 영업직원 권한으로 반출을 했습니다. 물류에서는 올 가을에 출고해야 해서 정리를 다 해놓은 건데 이렇게 가져가면 또 정리해야 하는 수고를 어떻게 할 거냐고 쓴소리도 하였지만... 내게 생각이 있다며 출고 지시를 강행했습니다.

행사 매대를 준비하는 날이 수요일이니.. 오후 4시까지 물량을 맞춰 밖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매대에 두꺼운 패딩부터 경량 패딩까지.. 겨울용품으로 매대 20대 중 10대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10대에는 매장의 창고에 있던 재고를 끌어다 놓고 구성했고, 신발류 등으로 전부 채웠죠. 

이렇게 준비하고 행사 매대 교체 타임에 맞춰 행사장으로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파트장부터.. 부지점장까지 나와서... 저를 호되게 혼을 냈습니다.. 겨울 상품을 가져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ㅠㅠ

심지어 POP 출력도 못해주겠다며, 회사 영업부장님께 전화를 직접 넣어서 불같이 화를 냈었습니다.

그 후 부장님이 전화로 또 한 번 저에게 불같이 화를 냈죠. 이유를 설명하려 해도 듣지도 않으니, 무조건 제 잘못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당장 내일 물건 교체하라는 이야기와 함께, 대형 유통 지점에서는 급하게 행사장의 매대를 중앙에서 구석으로 몰아 버렸습니다. 저희 때문에 다른 업체들도 불똥이 튀어.. 없던 물건 더 준비해서 중앙행사장을 밤새 채워야 했습니다.

저는 다음날 출근도 못하고 매장으로 와서, 판매 지원까지 해야 했습니다. 회사에 들어오지 말라는 부장님의 목소리가 아침 출근길을 막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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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대 출력은 "역시즌 겨울 패딩 전"이라고 해서 내걸었습니다.  다들 핫 썸머 어쩌고 하는 타이틀로 행사하는데...

지점장님은 아침에 보고를 받고... 저에게 와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긴 했지만... 못 미더워 하셨지요....

솔직히... 이쯤 되니... 매장 직원들에게는 매장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고, 행사장에 대해서는 모두가 함구하는 상황이었어요..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아마.. 그날 아르바이트 직원분들이 가장 크게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본사 담당 영업직원까지 깨지는 걸 봤으니 말이죠..

그런데 그날.... 가장 두껍고 비싼 겨울 패딩이 3장 팔렸습니다. 매장 매출보다 더 높은 매출이었고... 물량 교체 이야기는 지켜보자로 바뀌었습니다. 아마 지점장님이 그렇게 지시하신 것 같아요.

그러나  회사에서는 연락 한 통 없었죠.. 아마 제 흉을 보고 있던가...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금요일부터는 경량 패딩은 절반이 팔려나가기까지 했습니다. 한분이 여러 장을 사시기도 했고... 

토요일에는 남자 두꺼운 패딩이 다 팔려서... 제가 물류에 내려가서 좀 더 가져와야 하는 상황까지 왔고요.

첫 목요일의 매출에 대해서 본사에서는 제가 지인 불러다 판 것 아니냐.. 아니면  제가 가매출 찍은것이다 등등... 억측이 난무했다던데..

저는 주말 휴무도 없이 행사장으로 나와 있었어야 했습니다. 이 행사 끝나면 퇴사한다는 마음을 먹으면서 말이죠.

금토의 매출에..... 일요일에 휴일임에도 팀장님이 직접 찾아왔더라고요.. 눈으로 확인하려고... 역시 본사에서는 그 매출이 거짓아라 여기고 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역시즌 행사라는 것을 처음 해봤고... 성공 아닌 성공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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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모든 공로는... 제가 아닌.. 제 윗선들이 다 차지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죠.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지시로 그렇게 된 것이다..라는 식으로 사장님께 이야기하는 걸 보고... 많이 속상했었습니다.

이후에는 아예 신상 겨울 패딩을 조기 입고시켜서 8월 15일 전후로 전 매장에 출고시키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는데...

솔직히.. 저는 그런 걸 보면서... 이젠 이 매출도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매년 역시즌 행사는 그 매출이 점점 줄어들었으니 말이죠...

이제는 온라인까지 역시즌 행사라는 식으로 한여름에 겨울 아웃도어 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역시즌 행사가 자리매김한 것인지는 몰라도... 매출은 생각만큼 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맘때면... 어디서든, 다 똑같네"라는 걸 소비자들이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근무했던 아웃도어에서는 올해도 역시.... 역시즌 행사를 한다고 연락받았는데......

후배 직원이 이야기를 하길... 이제는 이러한 행사가 물류의 상황 때문 에라고 해야 하는 분위기라고 하네요.

봄 상품 반품 정리도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겨울상품이 입고가 되니 물류창고에 적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다고...

제가 진행했던 역시즌 행사의 목적과 달리 지금의 역시즌 행사의 목적이 바뀐 것이... 소비자에게 과연 구매 선택으로 이어지게 될지 의문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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